여행 가방 한쪽에는 사람의 짐이, 다른 한쪽에는 반려견의 밥그릇과 목줄이 담겼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한 뒤 함께 즐길 프로그램을 찾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숙소는 늘었지만 반려견과 보호자가 같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여행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전북 남원시가 운영하는 농촌관광 브랜드 '팜투어 남원누비GO'는 이런 빈틈을 메우기 위해 반려견 가족을 위한 체류형 농촌여행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지리산 자락의 공방과 농장, 숙소를 하나의 여행 코스로 연결해 사람과 반려견이 함께 머물고 체험하는 1박2일 일정이다.
지난 1일 찾은 남원시 이백면 옻칠목공체험관광협동조합 공방.
작업대 위에는 천연 옻칠을 입힌 목걸이와 작은 자개 조각들이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핀셋으로 자개를 하나씩 붙이며 전통공예를 완성했고, 보호자들은 우드버닝 기법으로 반려견 이름을 새긴 나무 이름표를 만들었다. 작업대 아래에서는 반려견들이 조용히 주인을 기다렸다.
이틀 동안 참가자들이 손수 만든 작품은 옻칠 자개 목걸이와 반려견 얼굴이 담긴 컵받침, 이름표 등이다. 여행의 추억이 사진에만 남지 않고 생활 속 물건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남원시농촌종합지원센터 조수영 농촌관광 코디네이터는 "반려견과 함께 갈 수 있는 곳은 조금씩 늘고 있지만 정작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는 부족했다"며 "숙소와 체험, 식사를 지역이 함께 연결해 반려동물 가족도 농촌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남원지역 16개 농가와 관광경영체가 참여했다.
공방에서는 전통 목공예 체험을 진행하고, 해발 600m 치유농장인 지리산들꽃다물농장은 흑돼지 바비큐 팜파티를 맡는다. 숙박은 산내면의 '지리산순이네흙집'과 '별헤는밤펜션'이 담당한다.
각 농가가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대신 하나의 브랜드 아래 역할을 나누는 방식이다. 숙박과 식사, 체험을 묶은 패키지는 사업비 지원을 통해 참가자는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하고 참여 농가는 정상 요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프로그램이 열리는 지리산은 반려견과 함께 머물기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뱀사골과 달궁계곡, 정령치, 고랭지 농촌마을 등이 가까운 거리에 이어져 차량 이동이 길지 않고 산책 코스도 다양하다.
산내면의 순이네흙집은 마을 끝자락에 자리 잡아 반려견이 비교적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으며, 안내견 역할을 하는 반려견 '초코'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별헤는밤펜션 역시 달궁계곡까지 도보로 이동할 수 있어 여름철 물놀이를 즐기려는 가족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여행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린 프로그램은 이른바 '마른하늘에 물벼락' 이벤트였다.
우비를 입은 참가자가 의자에 앉으면 가족이 공을 던져 표적을 맞히는 순간 머리 위 물통이 쏟아지는 방식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향해 공을 던지며 웃음을 터뜨렸고, 어른들은 흠뻑 젖은 채 더위를 식혔다. 반려견들은 별도 쉼터에서 행동지도사의 보호 아래 휴식을 취했다.
저녁에는 운봉읍 지리산들꽃다물농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느티나무 숲 아래에서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과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산나물, 감자와 옥수수 등이 차려졌고 반려견들도 보호자 곁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 일정에는 국가공인 반려견 행동지도사의 산책교육과 1대1 행동상담도 포함됐다.
반려견 행동지도사 류재은 씨는 "짖음이나 사회성 문제는 환경을 천천히 바꿔주면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며 "여행 중 만나는 다양한 상황을 교육 기회로 활용하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전주에서 참가한 한 보호자는 "산책 때마다 짖는 반려견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여행을 하면서 행동상담까지 받을 수 있어 기대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온 또 다른 참가자는 "도시에서는 늘 주변을 의식했는데 지리산에서는 반려견과 함께 마당에 앉아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이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프로그램은 회차별 선착순 8개 팀을 모집해 운영되며 팀당 2인 이상이 참여할 수 있다.
남원시는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확산되는 만큼 농촌관광도 이에 맞는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람과 반려견이 함께 만든 공예품은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행을 기억하게 한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옻칠과 자개 위에는 반려견의 이름이 새겨졌고, 지리산에서 보낸 하루는 가족 모두의 추억으로 남았다.
더펜뉴스 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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