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0일, 전북은행 이사회와 임시 주주총회는 박춘원 JB우리캐피탈 대표를 차기 은행장으로 선임했다.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관련 의혹은 국가수사본부로 이관된 상태였다. 대통령의 공개 경고, 금융당국의 반복된 문제 제기, 금융권 안팎의 우려가 이어졌지만 인사는 예정대로 강행됐다.
이날은 단순한 은행장 선임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경고와 감독당국의 문제 제기가 제동 장치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날이며, 동시에 JB금융지주 김기홍 회장을 정점으로 한 권력 구조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날이다.
이번 사태는 전북은행장 인선만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이 인사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그 결과로 이어진 권력의 궤적은 김기홍 회장의 3연임 과정에서 이미 시작됐다. 김 회장은 2019년 회장 취임 이후 2022년 연임에 성공했고, 2025년 세 번째 임기를 확보했다. 문제의 핵심은 연임 그 자체가 아니라, 연임을 가능하게 만든 방식이다.
JB금융은 회장 3연임을 앞두고 지배구조 내부 규범을 개정했다. 기존에는 사내이사 선임과 재선임 시 연령을 만 70세로 제한하고, 재임 중 만 70세가 도래하면 임기를 정기 주주총회까지로 제한하는 규정이 있었다. 이 조항은 선임과 재선임 시점에만 만 70세 미만이면 된다는 문구로 바뀌었다. 단 한 줄의 변경으로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한 제도의 취지는 사라졌고, 특정 인물을 위한 통로가 만들어졌다.
형식적으로는 합법이었다. 이사회 의결도 있었고, 내부 규범 개정 절차도 갖췄다. 그러나 문제는 합법 여부가 아니라 제도가 누구를 위해 작동했는지다.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핵심은 권력의 장기 집중을 막고, 이사회가 경영진을 견제하며, CEO 개인의 이해관계가 조직 전체를 좌우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JB금융의 이사회는 견제자가 아니라 정관 개정의 통로로 기능했다.
이 순간부터 김기홍 체제는 단순한 장기 재임이 아니라 제도를 재설계할 수 있는 권력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장기간 재임하는 회장은 인사와 보수, 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이사회를 우호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사회는 질문을 던지기보다 결정을 정당화하는 기구로 변한다. JB금융 역시 이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전북은행은 JB금융의 핵심 계열사다. 자산 규모나 수익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금융의 상징이자 지주 권력이 실제로 작동하는 전초기지다. 이곳의 은행장을 누가 맡느냐는 지주 회장의 권력이 상징을 넘어 실질로 귀속되는 문제다. 박춘원 대표의 인선은 이 점에서 결정적이었다.
이미 한 차례 무기한 연기됐던 안건은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기는커녕 국가수사본부 수사로 격상된 상황에서도 다시 상정돼 통과됐다. 이는 이 체제에서는 외부의 경고와 우려가 내부 인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당국 업무보고 자리에서 금융권 지배구조를 두고 가만 놔두니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회장 했다가 은행장 했다가 오가며 10년, 20년씩 지배권을 행사한다고 지적했다. 특정 회사를 지목하지 않았지만, 현실의 사례는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는 단 한 치의 수정도 없이 진행됐다. 이는 대통령의 발언이 가볍다는 뜻이 아니라, 현장의 권력 구조가 그만큼 견고하다는 방증이다.
금융당국은 민간 금융사의 인사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강조한다. 그 말 자체는 틀리지 않다. 그러나 개입의 한계와 감독의 책임은 구분돼야 한다. 경고 이후에도 아무런 조정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감독 체계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한계는 결국 책임의 문제로 귀결된다. 감독이 사전에 작동하지 않으면, 사후의 부담은 검사와 제재, 제도 개편의 형태로 돌아온다.
한국 금융은 오랫동안 금융자율화라는 이름 아래 운영돼 왔다. 자율이 확대되는 동안 통제와 책임은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다. 자율은 곧잘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오해됐고, 회장은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군주처럼 군림했다. 이사회는 견제자가 아니라 충성 집단으로 변질됐다.
김기홍 체제는 이 구조적 문제의 전형이다. 전문경영인의 외피를 쓴 채, 규칙을 바꾸고 인사를 순환시키며 지배력을 유지하는 재벌 총수형 권력에 가깝다. 박춘원 전북은행장 선임은 이 흐름의 마지막 고리다. 지주 회장, 이사회, 주요 계열사, 그리고 전북은행장까지 하나의 축으로 묶이면서 JB금융의 권력 구조는 사실상 완결됐다.
2025년 12월 30일, 김기홍 회장은 전북은행장 인선을 마무리하며 자신의 금융 권력 구조를 완성했다. 그러나 이것은 성공담이 아니다. 금융자율화라는 이름 아래 제도가 사유화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경고 사례다.
김기홍 왕국은 완성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왕국은 지금 이 순간부터 제도와 신뢰라는 가장 취약한 균열 위에 서 있다. 균열은 언제나 완성된 순간부터 시작된다.
오신일 / 참여민주회 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