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 대통령은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매우 이례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관치금융의 문제로 정부가 직접 관여하지 않으려고 놔뒀더니,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소수가 돌아가며 계속 지배권을 행사한다”는 발언이었다. 대통령은 또 “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누가 나쁜 사람인지, 절차에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투서가 엄청나게 쏟아진다”고도 했다. 금융권 전반을 향한 공개 경고이자, 은행 지배구조의 병폐를 정면으로 겨냥한 문제 제기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 경고는 금융 현장에서 거의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경고 이후에도 금융권의 인사 관행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기존 구조가 그대로 유지됐다. JB금융그룹의 전북은행장 및 금융지주 부회장 인사는 그 상징적인 사례다. 대통령 발언 이후에도 JB금융은 인사 기조를 수정하지 않았고, 사법리스크와 지배구조 논란을 안은 인사를 그대로 강행했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분명해진다. 대통령의 공개 경고는 왜 금융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았는가.
JB금융 사태를 단순히 특정 금융사의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이 사례는 대통령이 지적한 ‘부패한 이너서클 금융’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교본에 가깝다. 대통령은 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투서가 쏟아진다고 했지만, 문제는 투서의 존재가 아니다. 감독당국과 금융사 모두 문제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고가 현실의 인사 결정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 자체다. JB금융은 바로 그 구조의 한가운데에 있다.
김기홍 JB금융지주 회장은 내규 개정을 통해 금융지주 최초로 3연임, 총 9년 체제를 완성했다. 절차는 존재했다. 이사회가 열렸고, 회장후보추천위원회도 구성됐다. 그러나 형식적 절차가 실질적 견제 장치로 작동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지배구조는 장기간 회장 중심으로 고착화됐고, 이사회와 사외이사 구성 역시 특정 인적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구조로 굳어졌다. 대통령의 공개 경고 이후에도 이 구조를 흔들려는 시도는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금융 관료 출신 중심의 이너서클 형성이다. 김기홍 회장은 금융감독원 부원장 출신으로 감독당국의 조직 문화와 판단 구조에 정통한 인물이다. JB금융지주와 전북은행 사외이사 가운데에도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감독 대상과 감독 주체가 인적 네트워크로 얽히는 순간, 감독은 제도에서 관계로 이동한다. 대통령의 경고 이후에도 이 인적 구조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전북은행장으로 선임된 박춘원 행장 인사는 이러한 구조의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박 행장은 은행 근무 경력이 없는 캐피탈 출신 인사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경력이 아니라 사법리스크였다. 박 행장은 ‘김건희 집사게이트’로 불린 IMS모빌리티 투자 건과 관련해 특검 소환 조사를 받은 이력이 있다. 일부에서는 특검 종료 시 기소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리스크가 해소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해당 사건은 종결된 것이 아니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 이첩됐고, 수사 주체만 변경된 상태다. 사법리스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통령은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사법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B금융은 이러한 리스크를 안은 인물을 지역 핵심 금융기관의 최고경영자로 선임했다. 이는 대통령의 경고가 현장에서 실질적인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 사건 수사가 실질적 진상 규명이 아니라 형식적 절차 이행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인사와 수사가 미묘하게 엇갈릴 때, 수사의 속도와 강도는 종종 조절의 대상이 된다. 이런 의심이 제기되는 순간, 감독과 수사의 신뢰는 이미 손상된다.
백종일 전 전북은행장의 금융지주 부회장 직행 인사 역시 마찬가지다. 백 부회장은 과거 캄보디아 프린스은행 경영에 관여한 이력이 있다. 프린스은행은 국제적으로 자금세탁, 금융범죄, 범죄조직 연계 의혹이 반복 제기돼 온 고위험 금융기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공개적 재검증이나 리스크 점검 없이 지주 핵심 보직 인사가 이뤄졌다. 이는 JB금융의 리스크 관리 기준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낳는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하나다. 대통령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가. 이는 권한이 없어서가 아니라, 책임이 분산된 구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사 이사회 가운데 어느 누구도 최종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메시지로만 남는다. 행정 명령과 구체적 지시로 전환되지 않은 경고는, 금융 이너서클에게는 ‘넘길 수 있는 신호’로 읽힌다.
이제 필요한 것은 추가적인 발언이 아니다. 구체적인 실행이다. 경제부총리를 통한 JB금융 인사 전 과정 점검, 금융감독원장을 통한 임원 적격성 사후 심사와 검사 착수 가능성 검토, 대통령실 경제비서관 라인을 통한 감독·수사 정보 공유 체계의 실질적 가동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특히 금융위원회 라인은 정치적 오해 가능성을 감안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경제부총리와 대통령실 중심의 구조 속에서 관리될 필요가 있다.
박춘원 행장 관련 IMS모빌리티 사건은 이제 국가수사본부의 손에 넘어가 있다. 이 사건은 국수본의 독립성과 수사 실효성을 증명해야 할 시험대가 됐다. 형식적 수사, 정무적 지연, 인사와 수사의 암묵적 분리는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부정해온 관행이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금융개혁 메시지는 현장에서 공허한 선언으로 남게 된다.
JB금융 사태는 단일 금융사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말한 ‘부패한 이너서클 금융’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깰 의지가 있는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이 사안이 정리되지 않는다면 금융권 전체는 이렇게 해석할 것이다. 경고는 하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고. 금융개혁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구조를 건드릴 때만 현실이 된다. JB금융 사태는 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고, 개혁 실패의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 선택은 더 이상 금융권의 문제가 아니다.
조용환 / 전 국립군산대 겸임교수














